[인터뷰]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작가 “사랑은 더 많은 삶을 가능하게 해”

입력 2021.10.10 (21:30) 수정 2021.10.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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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소설가

Q.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저는 독일 베를린 인근의, 호수가 있는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데요. 이곳은 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글을 쓰기 위해서 자주 머물렀던 곳입니다. 썸머하우스인데, 썸머하우스이기 때문에 난방시설이 있지도 않고, 최근까지는 더운 물이 나오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특히 이제 여름이 지나가서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숲과 호수를 산책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곳에서 글을 쓸 때 무척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가장 최근작인 <뱀과 물>, 그리고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를 이 집에서 썼어요.


Q.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어떤 작품?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제가 독일 생활의 아주 초창기에 쓴 작품입니다. 원래 의도는 자명하게 사랑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어요. 주인공인 화자는 자신의 독일어 선생인 M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사랑을 상실하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모종의 사랑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는 이야기입니다.


Q. 소설의 화자인 ‘나’에게 ‘M’은 어떤 존재?

M은 여성이자 남성이고 아름다움의 추상명사로서 음악이고 언어이고 자아이고 대상인 이상적인 존재입니다. 물론 어떤 인간도 그런 이상적인 존재가 될 순 없겠지만, 사랑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내가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마치 사물처럼 관찰하고 응시하고, 그렇게 바라보았던 언어, 고독 속에서 처음으로 낯선 감각을 일깨워주었던 그런 관계, 어떤 유일한 느낌이 불러일으킨 대상, 또한 나 자신이 그런 언어이고 그런 대상이고 그런 감각이 되는 경험을 M이라는 인물 안으로 완전히 투사했던 것 같아요.


Q.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사랑이란?

오랫동안 저는 사랑은 혁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오직 혁명이라고. 혁명이 아닌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어요. 이 믿음은 사실 지금까지도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해진 점이 있다면 사랑은 더 많이 살게 합니다. 사랑은 더 많은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것이 아마 삶의 혁명이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이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내가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그런 때입니다.


Q. 살면서 그런 사랑을 만났는지?

적어도 두 번은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떠나갔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봐요. 저는 적어도 두 번을 경험했고, 그래서 무척 행복합니다.


Q. 소설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음악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마치 음악을 범신론과 같은 입장에서 보고 있어요.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리듬감이 있는 소리는 저에게 다 음악입니다. 최근에 제가 매우 매료되고 있는 음악은 아주 높은 텅 빈 허공을 울리는 물소리, 떨어지는 물소리, 그리고 아주 동굴처럼 텅 빈 공간에서 울리는, 문학 텍스트를 읽는 목소리, 그리고 속삭임입니다.


Q. 파격적인 글쓰기를 택하신 이유는?

저는 좀 형식에 대해서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형식은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시와 산문의 명확한 경계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어요. 작가가 ‘나’라는 화자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만들어진 경계는 허물어진다고 봅니다. 내 저는 글을 쓸 뿐이죠. 글을 쓸 뿐이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부르는가는 그들의 몫이지 내가 생각할 문제는, 혹은 내가 미리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M은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미덕으로 칭송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리어 M은 한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했다. M은 몇 마디의 구호나 텔레비전 토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M은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았다.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나는 M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내가 M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으며, 그 기회를 영영 잃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M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았다.


Q. 다음 작품은?

작가란 항상 다음 작품을 쓰고 있는 존재를 말하겠죠. 저도 다르지 않고. 그래서 저도 지금 다음 책을 쓰고 있는데, 아마 내년쯤에 어딘가에 연재를 하게 될 것 같은, 뭐 아닐 수도 있고. 그런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작품을 끝까지 써봐야 이것이 어떤 작품이 될 지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현재로는 이 작품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아무도 나에게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고 싶은지 어떤지 그것을 물어온 사람은 없었다. 책을 뺏기고 비웃음을 당했으나 나는 여전히 수업시간에 다른 것들을 읽었으며 대학을 졸업하는 그날까지 수업을 전혀 듣지 못했다. 듣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는 그들, 학창시절의 동료들을 다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단지 집단에 대한 복종의 태도,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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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0 21:30:47
    • 수정2021-10-10 21: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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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소설가

Q.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저는 독일 베를린 인근의, 호수가 있는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데요. 이곳은 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글을 쓰기 위해서 자주 머물렀던 곳입니다. 썸머하우스인데, 썸머하우스이기 때문에 난방시설이 있지도 않고, 최근까지는 더운 물이 나오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특히 이제 여름이 지나가서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숲과 호수를 산책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곳에서 글을 쓸 때 무척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가장 최근작인 <뱀과 물>, 그리고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를 이 집에서 썼어요.


Q.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어떤 작품?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제가 독일 생활의 아주 초창기에 쓴 작품입니다. 원래 의도는 자명하게 사랑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어요. 주인공인 화자는 자신의 독일어 선생인 M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사랑을 상실하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모종의 사랑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는 이야기입니다.


Q. 소설의 화자인 ‘나’에게 ‘M’은 어떤 존재?

M은 여성이자 남성이고 아름다움의 추상명사로서 음악이고 언어이고 자아이고 대상인 이상적인 존재입니다. 물론 어떤 인간도 그런 이상적인 존재가 될 순 없겠지만, 사랑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내가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마치 사물처럼 관찰하고 응시하고, 그렇게 바라보았던 언어, 고독 속에서 처음으로 낯선 감각을 일깨워주었던 그런 관계, 어떤 유일한 느낌이 불러일으킨 대상, 또한 나 자신이 그런 언어이고 그런 대상이고 그런 감각이 되는 경험을 M이라는 인물 안으로 완전히 투사했던 것 같아요.


Q.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사랑이란?

오랫동안 저는 사랑은 혁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오직 혁명이라고. 혁명이 아닌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어요. 이 믿음은 사실 지금까지도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해진 점이 있다면 사랑은 더 많이 살게 합니다. 사랑은 더 많은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것이 아마 삶의 혁명이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이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내가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그런 때입니다.


Q. 살면서 그런 사랑을 만났는지?

적어도 두 번은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떠나갔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봐요. 저는 적어도 두 번을 경험했고, 그래서 무척 행복합니다.


Q. 소설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음악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마치 음악을 범신론과 같은 입장에서 보고 있어요.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리듬감이 있는 소리는 저에게 다 음악입니다. 최근에 제가 매우 매료되고 있는 음악은 아주 높은 텅 빈 허공을 울리는 물소리, 떨어지는 물소리, 그리고 아주 동굴처럼 텅 빈 공간에서 울리는, 문학 텍스트를 읽는 목소리, 그리고 속삭임입니다.


Q. 파격적인 글쓰기를 택하신 이유는?

저는 좀 형식에 대해서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형식은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시와 산문의 명확한 경계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어요. 작가가 ‘나’라는 화자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만들어진 경계는 허물어진다고 봅니다. 내 저는 글을 쓸 뿐이죠. 글을 쓸 뿐이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부르는가는 그들의 몫이지 내가 생각할 문제는, 혹은 내가 미리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M은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미덕으로 칭송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리어 M은 한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했다. M은 몇 마디의 구호나 텔레비전 토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M은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았다.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나는 M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내가 M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으며, 그 기회를 영영 잃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M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았다.


Q. 다음 작품은?

작가란 항상 다음 작품을 쓰고 있는 존재를 말하겠죠. 저도 다르지 않고. 그래서 저도 지금 다음 책을 쓰고 있는데, 아마 내년쯤에 어딘가에 연재를 하게 될 것 같은, 뭐 아닐 수도 있고. 그런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작품을 끝까지 써봐야 이것이 어떤 작품이 될 지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현재로는 이 작품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아무도 나에게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고 싶은지 어떤지 그것을 물어온 사람은 없었다. 책을 뺏기고 비웃음을 당했으나 나는 여전히 수업시간에 다른 것들을 읽었으며 대학을 졸업하는 그날까지 수업을 전혀 듣지 못했다. 듣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는 그들, 학창시절의 동료들을 다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단지 집단에 대한 복종의 태도,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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