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유가족 특별채용’ 단체협약 규정 유효…대법, 원심 파기환송

입력 2020.08.27 (14:48) 수정 2020.08.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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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유족을 기업이 조건 없이 특별채용'하도록 정한 노사간 단체협약 조항은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백혈병으로 숨진 근로자 A 씨의 유족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의 선고공판을 오늘(27일) 열고, 기아자동차의 유족 채용 의무가 없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으므로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근로자 A 씨는 지난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화학물질인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일하다 현대차로 직장을 옮겼고, 이후 백혈병 진단을 받아 2010년 산업재해로 사망했습니다.

A 씨 유족은 기아차 노사간 단체협약에는 '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다면 직계가족 1명을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 채용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기아차가 사망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고 규정대로 가족 1명을 채용해 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핵심 쟁점은 산재 유족 중 1인을 특별채용 하기로 정한 단체협약 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인지 여부였습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1·2심 재판부는 단체협약의 해당 규정이 민법에 정면으로 해당돼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하급심 재판부는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하여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체협약 규정의 취지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 유족의 생계보장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해당 규정은 유족에게 생계보장이 필요한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있는데다, 결격사유가 없는 한 근로자의 능력적 측면에서 어떠한 추가 조건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사용자에게 직계가족 1인에 대한 채용의무를 부과해 과도한 혜택을 부여한단 겁니다.

하급심 재판부는 "만약 그러한 규정을 두게 되더라도 재능과 노력 이외의 것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사회 구성원의 충분한 합의 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요건 설정을 통해 예외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지, 단체협약 규정의 하나에 의하여 무제한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족들은 특채 조항이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체결된 조항이라며 이를 뒤집는 것은 오히려 신뢰를 깨는 일이라는 이유로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공개변론을 열었습니다.

대법원은 하급심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단체협약은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라며 법원이 개입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또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업무상 재해에 대해 추가적인 보상을 정한 것으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고, 노사는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이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며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는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몰군경 유가족, 5·18 민주화유공자 가족 등 특정한 범위의 사람에게 보상과 보호의 목적으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법질서가 예정하고 있는 수단에 해당한단 겁니다.

대법원은 특히 "기아차 등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합의하였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유족을 채용해 왔다"며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결격사유가 없는 근로자로 채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들의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냈습니다.

대법원은 유가족이 공개경쟁 채용 절차에서 우선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절차에서 특별 채용되는 이상, 이러한 특별채용이 피고들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채용하는 단체협약'에 대해 판단한 것은 아니라며, 이에 대한 소송이 제기될 경우 해당 규정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이기택·민효숙 대법관은 단체협약의 산재노동자 자녀 특별채용 조항이 구직희망자의 희생에 기반한 것으로 위법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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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27 14:48:37
    • 수정2020-08-27 18:06:37
    사회
'산업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유족을 기업이 조건 없이 특별채용'하도록 정한 노사간 단체협약 조항은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백혈병으로 숨진 근로자 A 씨의 유족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의 선고공판을 오늘(27일) 열고, 기아자동차의 유족 채용 의무가 없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으므로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근로자 A 씨는 지난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화학물질인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일하다 현대차로 직장을 옮겼고, 이후 백혈병 진단을 받아 2010년 산업재해로 사망했습니다.

A 씨 유족은 기아차 노사간 단체협약에는 '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다면 직계가족 1명을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 채용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기아차가 사망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고 규정대로 가족 1명을 채용해 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핵심 쟁점은 산재 유족 중 1인을 특별채용 하기로 정한 단체협약 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인지 여부였습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1·2심 재판부는 단체협약의 해당 규정이 민법에 정면으로 해당돼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하급심 재판부는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하여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체협약 규정의 취지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 유족의 생계보장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해당 규정은 유족에게 생계보장이 필요한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있는데다, 결격사유가 없는 한 근로자의 능력적 측면에서 어떠한 추가 조건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사용자에게 직계가족 1인에 대한 채용의무를 부과해 과도한 혜택을 부여한단 겁니다.

하급심 재판부는 "만약 그러한 규정을 두게 되더라도 재능과 노력 이외의 것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사회 구성원의 충분한 합의 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요건 설정을 통해 예외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지, 단체협약 규정의 하나에 의하여 무제한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족들은 특채 조항이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체결된 조항이라며 이를 뒤집는 것은 오히려 신뢰를 깨는 일이라는 이유로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공개변론을 열었습니다.

대법원은 하급심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단체협약은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라며 법원이 개입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또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업무상 재해에 대해 추가적인 보상을 정한 것으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고, 노사는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이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며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는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몰군경 유가족, 5·18 민주화유공자 가족 등 특정한 범위의 사람에게 보상과 보호의 목적으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법질서가 예정하고 있는 수단에 해당한단 겁니다.

대법원은 특히 "기아차 등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합의하였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유족을 채용해 왔다"며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결격사유가 없는 근로자로 채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들의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냈습니다.

대법원은 유가족이 공개경쟁 채용 절차에서 우선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절차에서 특별 채용되는 이상, 이러한 특별채용이 피고들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채용하는 단체협약'에 대해 판단한 것은 아니라며, 이에 대한 소송이 제기될 경우 해당 규정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이기택·민효숙 대법관은 단체협약의 산재노동자 자녀 특별채용 조항이 구직희망자의 희생에 기반한 것으로 위법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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