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루손 섬에 끌려온 18살 경북 소녀
입력 2025.08.14 (21:41)
수정 2025.08.1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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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4년 전인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습니다.
이날을 기념해 정부는 2017년부터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는데요.
올해는 "용기와 연대로 되찾은 빛, 평화를 밝히다"란 주제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실제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나라 피해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리핀엔 김 할머니로부터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최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필리핀 루손섬의 클라크 지역.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받지만 8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엔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요 출격 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당시 경북의 한 작은 마을에서 끌려온 18살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김소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거로 추정되는 필리핀 클라크입니다.
미군이 쓴 포로심문 보고서에는 김소란 할머니와 함께 62명의 한국인이 이곳 필리핀까지 끌려왔다고 적혀있습니다.
병원에서 붕대를 씻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속아, 언니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자매가 피해를 받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닌데 그런 일이 있어서 마음이 좀 아픈 부분이 있었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에 의존해야 했던 필리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어려웠던 이 곳에서, 처음 용기를 낸 사람은 '필리핀의 김학순'으로 불리는 로사 헨슨 할머니입니다.
1991년 한국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힘을 얻은 겁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로사 헨슨)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그 이후에 많은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을 시작을 했죠."]
함께 증언에 나섰던 에스텔리다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한국의 수요 시위에 참석하며 전 세계에 피해 사실을 알리다 지난해 아흔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레노/에스텔리다 디 할머니 유족 : "이게 과연 해결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정의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제 필리핀과 한국에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각각 6명 정도.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최민영입니다.
촬영기자:김재현 하정현/그래픽:여현수/사진제공:정의기억연대
34년 전인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습니다.
이날을 기념해 정부는 2017년부터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는데요.
올해는 "용기와 연대로 되찾은 빛, 평화를 밝히다"란 주제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실제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나라 피해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리핀엔 김 할머니로부터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최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필리핀 루손섬의 클라크 지역.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받지만 8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엔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요 출격 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당시 경북의 한 작은 마을에서 끌려온 18살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김소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거로 추정되는 필리핀 클라크입니다.
미군이 쓴 포로심문 보고서에는 김소란 할머니와 함께 62명의 한국인이 이곳 필리핀까지 끌려왔다고 적혀있습니다.
병원에서 붕대를 씻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속아, 언니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자매가 피해를 받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닌데 그런 일이 있어서 마음이 좀 아픈 부분이 있었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에 의존해야 했던 필리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어려웠던 이 곳에서, 처음 용기를 낸 사람은 '필리핀의 김학순'으로 불리는 로사 헨슨 할머니입니다.
1991년 한국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힘을 얻은 겁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로사 헨슨)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그 이후에 많은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을 시작을 했죠."]
함께 증언에 나섰던 에스텔리다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한국의 수요 시위에 참석하며 전 세계에 피해 사실을 알리다 지난해 아흔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레노/에스텔리다 디 할머니 유족 : "이게 과연 해결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정의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제 필리핀과 한국에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각각 6명 정도.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최민영입니다.
촬영기자:김재현 하정현/그래픽:여현수/사진제공: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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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5-08-14 22: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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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인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습니다.
이날을 기념해 정부는 2017년부터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는데요.
올해는 "용기와 연대로 되찾은 빛, 평화를 밝히다"란 주제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실제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나라 피해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리핀엔 김 할머니로부터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최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필리핀 루손섬의 클라크 지역.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받지만 8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엔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요 출격 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당시 경북의 한 작은 마을에서 끌려온 18살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김소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거로 추정되는 필리핀 클라크입니다.
미군이 쓴 포로심문 보고서에는 김소란 할머니와 함께 62명의 한국인이 이곳 필리핀까지 끌려왔다고 적혀있습니다.
병원에서 붕대를 씻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속아, 언니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자매가 피해를 받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닌데 그런 일이 있어서 마음이 좀 아픈 부분이 있었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에 의존해야 했던 필리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어려웠던 이 곳에서, 처음 용기를 낸 사람은 '필리핀의 김학순'으로 불리는 로사 헨슨 할머니입니다.
1991년 한국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힘을 얻은 겁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로사 헨슨)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그 이후에 많은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을 시작을 했죠."]
함께 증언에 나섰던 에스텔리다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한국의 수요 시위에 참석하며 전 세계에 피해 사실을 알리다 지난해 아흔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레노/에스텔리다 디 할머니 유족 : "이게 과연 해결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정의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제 필리핀과 한국에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각각 6명 정도.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최민영입니다.
촬영기자:김재현 하정현/그래픽:여현수/사진제공:정의기억연대
34년 전인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습니다.
이날을 기념해 정부는 2017년부터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는데요.
올해는 "용기와 연대로 되찾은 빛, 평화를 밝히다"란 주제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실제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나라 피해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리핀엔 김 할머니로부터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최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필리핀 루손섬의 클라크 지역.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받지만 8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엔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요 출격 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당시 경북의 한 작은 마을에서 끌려온 18살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김소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거로 추정되는 필리핀 클라크입니다.
미군이 쓴 포로심문 보고서에는 김소란 할머니와 함께 62명의 한국인이 이곳 필리핀까지 끌려왔다고 적혀있습니다.
병원에서 붕대를 씻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속아, 언니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자매가 피해를 받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닌데 그런 일이 있어서 마음이 좀 아픈 부분이 있었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에 의존해야 했던 필리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어려웠던 이 곳에서, 처음 용기를 낸 사람은 '필리핀의 김학순'으로 불리는 로사 헨슨 할머니입니다.
1991년 한국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힘을 얻은 겁니다.
[양미강/전 역사NGO포럼 상임대표 : "(로사 헨슨)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그 이후에 많은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을 시작을 했죠."]
함께 증언에 나섰던 에스텔리다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한국의 수요 시위에 참석하며 전 세계에 피해 사실을 알리다 지난해 아흔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레노/에스텔리다 디 할머니 유족 : "이게 과연 해결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정의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제 필리핀과 한국에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각각 6명 정도.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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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기자 my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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