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기자가 주식으로 장난 못 치는 이유
입력 2025.08.03 (06:00)
수정 2025.08.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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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하면 패가망신'을 실현해 보겠다며 민관 합동 조직이 신설됐습니다.
이름은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주가조작에 대해 빠르고 강한 처벌을 예고했습니다.
대통령이 구성을 지시한 지 한 달여 만에 지난달 30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 "전문가 집단 선행매매 안 돼"
언론 대부분 출범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최근 국내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거로 보입니다.
그런데 권대영 부위원장의 발언 중 유독 기사화가 안 된 대목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중점 추진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 투자자보다 우월적인 정보, 유리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이런 접근성을 이용해서 선행매매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일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스스로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행위 준칙을 만들어서 자정 능력을 보여주시기를 당부드리겠습니다. 선진국에는 코드 오브 컨덕트 (code of conduct)라 해서 그런 사람들의 어떤 행위 준칙이 촘촘하게 마련돼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전문가 누구의, 어떤 선행매매를 염두에 둔 발언일까요.
금융위는 지난달 16일 메리츠 화재 이 모 사장 등 임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합니다. 자회사 합병 정보를 알고 미리 주식을 사고팔아 거액의 시세차익을 본 혐의입니다.
이 사건일까요?
이 사건은 선행매매가 아니라 미공개정보 이용에 더 가깝습니다.
선행매매도 미공개정보 이용도 둘 다 호재성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사서, 오른 다음에 팔아 부당 이익을 거뒀단 점은 같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공개정보 이용의 주체는 기업 내부자입니다. 선행매매는 증권사 직원, 기자 등 외부자가 주체가 될 때가 많습니다.
검색어 '선행매매'를 포털에 입력해 봤습니다.

'기자 선행매매' 사건이 가장 앞머리에 나옵니다.
KBS는 미리 주식을 사고 호재를 보도해 주가를 띄운 뒤 주식을 팔아 거액을 챙기는 일부 기자의 수법을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주식 사고, 기사 쓰고, 주식 팔고…기자 20여 명 수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96018
[단독] 기자 선행매매 수사, ‘특징주’ 100여 개 뒤진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97743
수사 중인 선행매매 사건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선행매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권 부위원장의 발언은 적어도 기자 선행매매 혐의도 염두에 둔 거로 이해됩니다.

■ 뉴욕타임스 "개별 주식 금지"
권 위원장은 선행매매의 '주체'들에게 "전문가 집단인 만큼 행위 준칙(code of conduct)을 만들어서 자정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행위 준칙은 뭘 말하는 걸까요.
미국 뉴욕타임스 윤리 강령을 찾아봤습니다.
※ NYT Ethical Journalism (뉴욕타임스 윤리 강령) 중 Staff members may not own stock or have any other financial interest in a company, enterprise or industry that figures or is likely to figure in coverage that they provide, edit, package or supervise. 뉴욕타임스 직원들은 자신이 제공하거나, 편집하거나, 패키징하거나, 감독하는 보도 내용에 등장하거나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회사, 기업 또는 산업의 주식을 소유하는 등의 재정적 이해관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
뉴욕타임스는 '보도 전 주식 매입과 매도'를 금지합니다. 취재하는 기업은 물론 그 업종에 대한 주식도 보유하면 안 됩니다.
가상자산 취재 기자는 특정 금액이 이상의 코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배우자 등 기자의 가족이 이해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회사에 보고해야 합니다. 가령, 산업부 기자의 배우자가 특정 대기업의 임원이라면 회사에 미리 알리란 의미입니다.
어떤가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규정만큼, 혹은 그 이상 엄격해 보입니다.
윤리 강령을 올곧이 지킨다면, 뉴욕 타임스 산업부 기자가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보유할 수 있는 상품은 분산형 펀드나 ETF, 국채 정도입니다.

영국의 유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 세계적 통신사 '로이터'도 비슷한 윤리 강령을 두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편집 행동 강령’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 경우에도, 직원과 프리랜서 기고자는 일반 공개에 앞서 입수한 금융 정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로이터도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매하거나 매매를 권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해당 언론사 기자들이 주식 선행매매 혐의로 처벌받았다는 기록은 검색되지 않습니다.
국내 언론사는 어떨까요.
KBS는 직원 윤리 강령 12조에서 "직무상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타인에게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제5조 올바른 정보사용에서 "취재 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언론사마다 윤리 강령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모호합니다. 헐겁디헐거운 규정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 시장의 역사가 짧은 만큼 언론의 역사도 아직은 서구에 비할 바 못 됩니다. 갈 길이 멉니다.
규정에 빈틈이 있고, 그걸 악용한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면, 빈틈부터 메우는 게 순서입니다. 새롭게 창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해외 유수 언론의 선행 사례를 충실히 뒤따르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취재 중 취득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금융상품 매매를 하지 않는다'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윤리 강령을 강화해도, 안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특정 언론인의 일탈입니다.
최소한의 강령조차 계속 안 만든다면, 그때부터는 언론 업계의 퇴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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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기자가 주식으로 장난 못 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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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03 06:00:14
- 수정2025-08-03 08:33:23

'주가조작하면 패가망신'을 실현해 보겠다며 민관 합동 조직이 신설됐습니다.
이름은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주가조작에 대해 빠르고 강한 처벌을 예고했습니다.
대통령이 구성을 지시한 지 한 달여 만에 지난달 30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 "전문가 집단 선행매매 안 돼"
언론 대부분 출범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최근 국내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거로 보입니다.
그런데 권대영 부위원장의 발언 중 유독 기사화가 안 된 대목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중점 추진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 투자자보다 우월적인 정보, 유리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이런 접근성을 이용해서 선행매매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일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스스로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행위 준칙을 만들어서 자정 능력을 보여주시기를 당부드리겠습니다. 선진국에는 코드 오브 컨덕트 (code of conduct)라 해서 그런 사람들의 어떤 행위 준칙이 촘촘하게 마련돼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전문가 누구의, 어떤 선행매매를 염두에 둔 발언일까요.
금융위는 지난달 16일 메리츠 화재 이 모 사장 등 임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합니다. 자회사 합병 정보를 알고 미리 주식을 사고팔아 거액의 시세차익을 본 혐의입니다.
이 사건일까요?
이 사건은 선행매매가 아니라 미공개정보 이용에 더 가깝습니다.
선행매매도 미공개정보 이용도 둘 다 호재성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사서, 오른 다음에 팔아 부당 이익을 거뒀단 점은 같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공개정보 이용의 주체는 기업 내부자입니다. 선행매매는 증권사 직원, 기자 등 외부자가 주체가 될 때가 많습니다.
검색어 '선행매매'를 포털에 입력해 봤습니다.

'기자 선행매매' 사건이 가장 앞머리에 나옵니다.
KBS는 미리 주식을 사고 호재를 보도해 주가를 띄운 뒤 주식을 팔아 거액을 챙기는 일부 기자의 수법을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주식 사고, 기사 쓰고, 주식 팔고…기자 20여 명 수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96018
[단독] 기자 선행매매 수사, ‘특징주’ 100여 개 뒤진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97743
수사 중인 선행매매 사건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선행매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권 부위원장의 발언은 적어도 기자 선행매매 혐의도 염두에 둔 거로 이해됩니다.

■ 뉴욕타임스 "개별 주식 금지"
권 위원장은 선행매매의 '주체'들에게 "전문가 집단인 만큼 행위 준칙(code of conduct)을 만들어서 자정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행위 준칙은 뭘 말하는 걸까요.
미국 뉴욕타임스 윤리 강령을 찾아봤습니다.
※ NYT Ethical Journalism (뉴욕타임스 윤리 강령) 중 Staff members may not own stock or have any other financial interest in a company, enterprise or industry that figures or is likely to figure in coverage that they provide, edit, package or supervise. 뉴욕타임스 직원들은 자신이 제공하거나, 편집하거나, 패키징하거나, 감독하는 보도 내용에 등장하거나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회사, 기업 또는 산업의 주식을 소유하는 등의 재정적 이해관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
뉴욕타임스는 '보도 전 주식 매입과 매도'를 금지합니다. 취재하는 기업은 물론 그 업종에 대한 주식도 보유하면 안 됩니다.
가상자산 취재 기자는 특정 금액이 이상의 코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배우자 등 기자의 가족이 이해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회사에 보고해야 합니다. 가령, 산업부 기자의 배우자가 특정 대기업의 임원이라면 회사에 미리 알리란 의미입니다.
어떤가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규정만큼, 혹은 그 이상 엄격해 보입니다.
윤리 강령을 올곧이 지킨다면, 뉴욕 타임스 산업부 기자가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보유할 수 있는 상품은 분산형 펀드나 ETF, 국채 정도입니다.

영국의 유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 세계적 통신사 '로이터'도 비슷한 윤리 강령을 두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편집 행동 강령’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 경우에도, 직원과 프리랜서 기고자는 일반 공개에 앞서 입수한 금융 정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로이터도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매하거나 매매를 권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해당 언론사 기자들이 주식 선행매매 혐의로 처벌받았다는 기록은 검색되지 않습니다.
국내 언론사는 어떨까요.
KBS는 직원 윤리 강령 12조에서 "직무상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타인에게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제5조 올바른 정보사용에서 "취재 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언론사마다 윤리 강령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모호합니다. 헐겁디헐거운 규정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 시장의 역사가 짧은 만큼 언론의 역사도 아직은 서구에 비할 바 못 됩니다. 갈 길이 멉니다.
규정에 빈틈이 있고, 그걸 악용한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면, 빈틈부터 메우는 게 순서입니다. 새롭게 창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해외 유수 언론의 선행 사례를 충실히 뒤따르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취재 중 취득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금융상품 매매를 하지 않는다'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윤리 강령을 강화해도, 안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특정 언론인의 일탈입니다.
최소한의 강령조차 계속 안 만든다면, 그때부터는 언론 업계의 퇴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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