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터뷰]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의료대란 본질 의사 부족 아냐”

입력 2024.10.24 (15:50) 수정 2024.10.2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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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해 3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광주광역시에서 의사 출신으로 보건소장을 거쳐 전문직 공무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문화와 자치행정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던 박 전 정책관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지역 방역의 사령탑으로 역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공공의료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방역 체계 구축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발탁됐습니다. 공직을 벗어나 무등산에서 커피농장을 일구고 있는 박 전 정책관은 치유농업사로서 인생 2막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의사 출신이면서 현장 중심 보건의료 전문가, 공공의료 설계 책임자로 일했던 박향 전 정책관을 만나 현시점 의료 공백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습니다.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백미선/기자
지난해 3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는데 소회는 어떤가.

▶박향/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한마디로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대부분의 의사 공무원은 공공병원을 제외하고는 보건소 근무가 대부분이고 보건소장으로 정년을 맞이한다. 저 같은 경우는 보건소를 거쳐 광역자치단체, 중앙부처까지 거쳤으니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시에서 일반행정 분야 국장을 했던 5~6년을 제외하고는 주로 보건 복지분야에서 근무했는데 의료현장의 대혼란이 발생한 시기에 보건복지부에서 퇴직하게 되어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백
보건복지부로 자리를 옮길 당시 굉장히 화제였다.

▶박
코로나가 그런 기회를 갖게 했을 수도 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 같은 경우, 특히 고시 출신들은 당연한 루트로 지방행정 거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오가기도 하지만 전문직 공무원은 드물다. 정년이 4~5년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복지부에서 요청이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보건소에 있을 때나 광역시에 있을 때 중앙정부랑 인적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왜냐하면 중앙정부가 현장을 잘 몰라 정책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로 옮기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지금 가는 게 의미가 있겠나…라면서 많이 망설였다. 워낙 심각한 코로나 정국이었고 복지부에서도 지역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도 있고 해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겨서도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쯤 정권이 바뀌면서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왔다.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을 겸임하며 코로나19 브리핑 중인 박향 전 정책관.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을 겸임하며 코로나19 브리핑 중인 박향 전 정책관.

▶백
보건복지부 안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나

▶박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부와 모든 국민이 심혈을 기울였던 방역 대응이 정치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평가 절하 당했고, 필수 의료에 대한 개념이나 대응책도 정권이 바뀌면서 많이 바뀌어버렸다.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거기다 개인적으로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이 공직을 정리하는 시기로 맞는 건지 퇴직 이후의 삶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백
상황적 아쉬움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공직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코로나19 당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떤가.

▶박
당연하다. 코로나 유행 초기를 되짚어보면 그 당시에는 '코로나에 감염되면 죽을 수 있다'라는 공포감이 있었다. 그만큼 긴박했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 모든 공무원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방역 수칙 관련해서도 거의 일반 범죄 못지않게 강력하게 대응했었다. 우리 지역에서 방역 수칙 위반으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철저히 대응했고, 그 결과로 감염 경로를 조기에 밝혀내고 사전 대응을 잘했다고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늘 긴장해야만 했다. 그리고 영업 제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소 상인들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늘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었다.

▶백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의료체계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지금의 의료 공백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추석 의료대란은 없었다'는 등 정부 발표 어떻게 보나.)

▶박
지금은 대혼란이다. 정부 발표는 겉으로 드러나는 심각한 응급실 뺑뺑이가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는 아주 응급한 진료가 아닌 경우는 아예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많은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백
의료 공백의 근본적인 원인, 무엇이라고 보나.

▶박
전공의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은 취득했지만,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는 의료인 교육생이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의사면허증을 가진 교육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교육생들이 병원에서 자리를 떴다고 지금과 같은 대혼란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현재의 의료대란은 단순히 의사 숫자가 부족하고 전공의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의료보험 통합, 건보수가 체계 변화, KTX 개통과 같은 환경 변화와 함께 보완되어야 할 많은 제도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기 대책들 위주로 대응을 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으로 지금과 같은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전공의들을 부도덕한 의사 집단으로 몰아붙여서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야말로 지금의 혼란을 가중한 원인이라고 본다.

▶백
보건의료 정책의 큰 그림이 없었다는 걸로 들린다

▶박
지금의 문제는 중앙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국민들에게 병원 문턱을 낮춰주려면 의료 자원에 관한 중장기적인 공급 대책을 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지역별 병상 규모, 전문의 숫자·비율, 전문의 과목별 규모 등을 전문가들과 함께 충분히 논의하고 조정해 와야 했으나 그리하지 않았다. 2000년에 보건의료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보건의료 발전 종합계획을 한 번도 수립하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수도권에서는 6000개의 병상이 허가받아 이미 신축 중인 곳도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늘린 것이 수도권 의사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을 억지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실제 수도권의 병상이 늘어날 것이 명확한 상황에서 지역대학 병원들 특히 응급의료과 등은 벌써 부터 인력 유출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한숨만 쉬고 있다.

▶백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나

▶박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의대 증원 규모 2천 명을 1시간 동안 논의하고 의결하는 기구가 아니다.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심의 의결한 이후에 의대 정원을 몇 명 늘릴지를 심의 의결 해야 했다.

▶백
지금의 의료 공백과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

▶박
정부의 반성을 전제로 의료계와 국민들이 모두 참여한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발표한 필수 의료 대책은 지극히 단기적 대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화 창구가 있어야 한다. 정부와 의료 단체와 국민들도. 지금 뭐가 문제인가에 대해서 함께 인식해야 한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아래에서는 낮은 의료수가가 개선되지 않고, 전문의의 지나친 세분화로 인해 국민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들도 현재 건보재정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이미 일상화 되었지만, 응급실 이용 기준 등 의료 이용 방식의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백
최근 전남 의대 설립. 목포냐 순천이냐를 놓고 삐걱댄다.

▶박
전남 지역의 전반적인 의료 상황을 분석해야한다. 목포와 순천의 차이는 뭔가. 대학병원을 만든다는 건 최고(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만드는 거다. 상급종합병원이 전남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뭔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찾아야 한다. 우선순위를 전남이 스스로 진단해야 한다. 전라남도민의 건강에 가장 취약한 문제가 뭐고, 그중에 상급종합병원을 세워야 할 이유가 어떤 질환에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가. 접근성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면 동부 지역에 있는 지역이 더 우선순위인가 아니면 섬 주민이냐. 무슨 이런 명분들을 만들어 내서 하나를 해야지 그러면 동에도 짓고 서에도 짓나 대학병원을.

▶백
정치적 이슈가 되어 버렸다는 비판도 있는데.

▶박
본질에 대한 고민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정책 결정을 누가 해야 하나. 전남도가 해야지.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책임을 지고 해야 한다.

무등산 농장에서 커피 나무를 돌보고 있는 박향 전 정책관.무등산 농장에서 커피 나무를 돌보고 있는 박향 전 정책관.

▶백
의료전문가에서 치유 농업사로 변신했다.

▶박
치유농업을 공부해 보니까 현재의 치유농업사 정책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고, 프로그램을 통해서 치유의 과정· 결과를 얻어낼까에 굉장히 집중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핵심이다. 다만 여기서 딸과 함께 커피 농사를 하면서 치유농업하는 과정 자체부터 생태적인 접근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고민을 했다. 하우스에서 커피를 키우다 보니 겨울에 에너지를 써서 온도를 높이면서 내가 지구한테 미안한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자연순환농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비료나 퇴비를 억지로 주는 게 아니고 자연 스스로 클 수 있는 그런 텃밭 환경을 조성해서 그 공간을 치유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방법, 텃밭 디자인 공부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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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터뷰]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의료대란 본질 의사 부족 아냐”
    • 입력 2024-10-24 15:50:06
    • 수정2024-10-24 15: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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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광주광역시에서 의사 출신으로 보건소장을 거쳐 전문직 공무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문화와 자치행정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던 박 전 정책관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지역 방역의 사령탑으로 역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공공의료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방역 체계 구축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발탁됐습니다. 공직을 벗어나 무등산에서 커피농장을 일구고 있는 박 전 정책관은 치유농업사로서 인생 2막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의사 출신이면서 현장 중심 보건의료 전문가, 공공의료 설계 책임자로 일했던 박향 전 정책관을 만나 현시점 의료 공백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습니다. <br />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백미선/기자
지난해 3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는데 소회는 어떤가.

▶박향/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한마디로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대부분의 의사 공무원은 공공병원을 제외하고는 보건소 근무가 대부분이고 보건소장으로 정년을 맞이한다. 저 같은 경우는 보건소를 거쳐 광역자치단체, 중앙부처까지 거쳤으니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시에서 일반행정 분야 국장을 했던 5~6년을 제외하고는 주로 보건 복지분야에서 근무했는데 의료현장의 대혼란이 발생한 시기에 보건복지부에서 퇴직하게 되어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백
보건복지부로 자리를 옮길 당시 굉장히 화제였다.

▶박
코로나가 그런 기회를 갖게 했을 수도 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 같은 경우, 특히 고시 출신들은 당연한 루트로 지방행정 거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오가기도 하지만 전문직 공무원은 드물다. 정년이 4~5년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복지부에서 요청이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보건소에 있을 때나 광역시에 있을 때 중앙정부랑 인적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왜냐하면 중앙정부가 현장을 잘 몰라 정책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로 옮기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지금 가는 게 의미가 있겠나…라면서 많이 망설였다. 워낙 심각한 코로나 정국이었고 복지부에서도 지역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도 있고 해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겨서도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쯤 정권이 바뀌면서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왔다.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을 겸임하며 코로나19 브리핑 중인 박향 전 정책관.
▶백
보건복지부 안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나

▶박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부와 모든 국민이 심혈을 기울였던 방역 대응이 정치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평가 절하 당했고, 필수 의료에 대한 개념이나 대응책도 정권이 바뀌면서 많이 바뀌어버렸다.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거기다 개인적으로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이 공직을 정리하는 시기로 맞는 건지 퇴직 이후의 삶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백
상황적 아쉬움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공직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코로나19 당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떤가.

▶박
당연하다. 코로나 유행 초기를 되짚어보면 그 당시에는 '코로나에 감염되면 죽을 수 있다'라는 공포감이 있었다. 그만큼 긴박했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 모든 공무원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방역 수칙 관련해서도 거의 일반 범죄 못지않게 강력하게 대응했었다. 우리 지역에서 방역 수칙 위반으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철저히 대응했고, 그 결과로 감염 경로를 조기에 밝혀내고 사전 대응을 잘했다고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늘 긴장해야만 했다. 그리고 영업 제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소 상인들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늘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었다.

▶백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의료체계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지금의 의료 공백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추석 의료대란은 없었다'는 등 정부 발표 어떻게 보나.)

▶박
지금은 대혼란이다. 정부 발표는 겉으로 드러나는 심각한 응급실 뺑뺑이가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는 아주 응급한 진료가 아닌 경우는 아예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많은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백
의료 공백의 근본적인 원인, 무엇이라고 보나.

▶박
전공의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은 취득했지만,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는 의료인 교육생이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의사면허증을 가진 교육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교육생들이 병원에서 자리를 떴다고 지금과 같은 대혼란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현재의 의료대란은 단순히 의사 숫자가 부족하고 전공의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의료보험 통합, 건보수가 체계 변화, KTX 개통과 같은 환경 변화와 함께 보완되어야 할 많은 제도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기 대책들 위주로 대응을 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으로 지금과 같은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전공의들을 부도덕한 의사 집단으로 몰아붙여서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야말로 지금의 혼란을 가중한 원인이라고 본다.

▶백
보건의료 정책의 큰 그림이 없었다는 걸로 들린다

▶박
지금의 문제는 중앙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국민들에게 병원 문턱을 낮춰주려면 의료 자원에 관한 중장기적인 공급 대책을 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지역별 병상 규모, 전문의 숫자·비율, 전문의 과목별 규모 등을 전문가들과 함께 충분히 논의하고 조정해 와야 했으나 그리하지 않았다. 2000년에 보건의료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보건의료 발전 종합계획을 한 번도 수립하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수도권에서는 6000개의 병상이 허가받아 이미 신축 중인 곳도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늘린 것이 수도권 의사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을 억지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실제 수도권의 병상이 늘어날 것이 명확한 상황에서 지역대학 병원들 특히 응급의료과 등은 벌써 부터 인력 유출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한숨만 쉬고 있다.

▶백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나

▶박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의대 증원 규모 2천 명을 1시간 동안 논의하고 의결하는 기구가 아니다.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심의 의결한 이후에 의대 정원을 몇 명 늘릴지를 심의 의결 해야 했다.

▶백
지금의 의료 공백과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

▶박
정부의 반성을 전제로 의료계와 국민들이 모두 참여한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발표한 필수 의료 대책은 지극히 단기적 대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화 창구가 있어야 한다. 정부와 의료 단체와 국민들도. 지금 뭐가 문제인가에 대해서 함께 인식해야 한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아래에서는 낮은 의료수가가 개선되지 않고, 전문의의 지나친 세분화로 인해 국민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들도 현재 건보재정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이미 일상화 되었지만, 응급실 이용 기준 등 의료 이용 방식의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백
최근 전남 의대 설립. 목포냐 순천이냐를 놓고 삐걱댄다.

▶박
전남 지역의 전반적인 의료 상황을 분석해야한다. 목포와 순천의 차이는 뭔가. 대학병원을 만든다는 건 최고(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만드는 거다. 상급종합병원이 전남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뭔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찾아야 한다. 우선순위를 전남이 스스로 진단해야 한다. 전라남도민의 건강에 가장 취약한 문제가 뭐고, 그중에 상급종합병원을 세워야 할 이유가 어떤 질환에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가. 접근성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면 동부 지역에 있는 지역이 더 우선순위인가 아니면 섬 주민이냐. 무슨 이런 명분들을 만들어 내서 하나를 해야지 그러면 동에도 짓고 서에도 짓나 대학병원을.

▶백
정치적 이슈가 되어 버렸다는 비판도 있는데.

▶박
본질에 대한 고민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정책 결정을 누가 해야 하나. 전남도가 해야지.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책임을 지고 해야 한다.

무등산 농장에서 커피 나무를 돌보고 있는 박향 전 정책관.
▶백
의료전문가에서 치유 농업사로 변신했다.

▶박
치유농업을 공부해 보니까 현재의 치유농업사 정책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고, 프로그램을 통해서 치유의 과정· 결과를 얻어낼까에 굉장히 집중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핵심이다. 다만 여기서 딸과 함께 커피 농사를 하면서 치유농업하는 과정 자체부터 생태적인 접근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고민을 했다. 하우스에서 커피를 키우다 보니 겨울에 에너지를 써서 온도를 높이면서 내가 지구한테 미안한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자연순환농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비료나 퇴비를 억지로 주는 게 아니고 자연 스스로 클 수 있는 그런 텃밭 환경을 조성해서 그 공간을 치유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방법, 텃밭 디자인 공부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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